제주어 손가락 명칭 소고
머리말
제주어는 육지말에서는 보이지 않는 보수적이거나 독특한 어형을 가진 일이 많으며, 손가락을 일컫는 명칭도 예외가 아니다. 이 짧은 글에서는 이러한 명칭을 형태의미론적으로 고찰해 본다.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한 이 글에서 제시된 제주어 어휘 및 그 분포는 모두 송상조(2023)를 따랐다. 뜻풀이는 그대로 제시한 것도 있으나 간략하게 바꿔 쓴 것도 있다. 제주 이외 지역의 방언형은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7~1995)을 참고했다.
엄지손가락
제주어에서 ‘엄지손가락’을 뜻하는 어형은 세 가지가 확인된다. 육지말과 동일한 어형과 육지말과 상이한 어형이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ㄱ) 엄지-손가락 (전역)
ㄴ) 어금-손가락 (금덕, 외도, 온평)
ㄷ) 엄금-손 (성읍)
우선 ‘손가락’은 당연히 指를 나타내는 것이다. (ㄷ)의 경우 ‘*엄금-손가락’과 같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표준어 ‘엄지손[大指]’에서와 마찬가지로 ‘손[手]’의 의미가 축소되어 指를 뜻하게 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또한 (ㄷ)의 ‘엄금-’은 (ㄴ)의 ‘어금-’에서 변한 말로 보인다. /ㄱ/ 앞에 비음이 덧나는 현상은 아래에서 논할 ‘새끼-손가락’~‘생끼-손가락’에서도 관찰되며, 여기서 ‘*엉금’이 아니라 ‘엄금’인 것은 아마도 (ㄱ)의 ‘엄-’에 이끌린 듯싶다.
다만 ‘어금’은 그 유래가 묘연하다. (ㄱ)과 (ㄴ)을 볼 때 육지말의 ‘어금니’~‘엄니’를 떠올리기 쉬운데, ‘엄지’가 ‘손 끝의 큰 손가락’을 가리키듯 ‘엄니’는 ‘입 끝의 큰 이’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의미상으로도 연관시킬 여지가 있다. 그러나 중세 국어 문헌을 보면 성조·의미 모두 맞지 않는다.
‘어금’은 18세기 말엽 「역어보」에서야 처음 문증되나, ‘엄’은 「훈언」에서 이미 문증된다1.
ㄱᄂᆞᆫ〮 엄〯쏘리〮니〮 <훈언:4a>
이로써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엄’은 ‘니[齒]’가 결합하기 전부터 이미 牙를 나타냈다. 즉 ‘엄쏘리’는 ‘엄 + -ㅅ- + 소리’, ‘어금닛소리’를 뜻하며, ‘엄[牙] + 지(指)’가 大指를 가리키기는 어렵다.
둘째, ‘엄[牙]’은 상성인데, 반면 ‘엄지’의 ‘엄’은 평성이다.
엄지〮 밧가라ᄀᆞ〮로〮 山根을〮 ᄇᆞᆯᄫᆞ〮면〮 <월석23:43a>
이로서 ‘어금니’~‘엄니’와 ‘어금손가락’~‘엄지손가락’을 연관짓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는 다만 ‘엄지’가 기원적으로 ‘*어금-지(指)’였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어금손가락’와 ‘엄금손’은 이 ‘*어금’의 어중 /ㄱ/를 보존한 형태로 보고자 한다. ‘*어금’에 대한 추가적 논의는 후고를 기한다.
검지손가락
제주어에서 ‘검지손가락’을 뜻하는 어형은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 ‘안주왜기’ 계열
ㄱ) 안주왜기-손가락 (전역)
ㄴ) 안쥐왜기-손가락 (전역)
ㄷ) 안주왜기 (전역)
ㄹ) 안주와기 (납읍)- ‘아금지’ 계열
ㄱ) 아금지-손가락 (김녕, 수산, 서홍)
(1ㄱ)와 (1ㄷ)를 보면 ‘안주왜기’ 형태가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을 알 수 있으나, (1ㄴ)에서는 ‘-주-’가 대신 ‘-쥐-’로도 나타난다. 이는 용언 ‘쥐-[握]’에 이끌린 변화로 보고자 한다. 또한 (1ㄹ)에서는 ‘-왜-’가 대신 ‘-와-’로도 나타나는데, 이는 ‘ㅣ’역행동화가 일어나지 않은 원형이거나 반대로 (1ㄷ)에서 ‘ㅣ’역행동화를 의식해서 과도교정이 일어난 결과일 것이다.
이 ‘-와기’~‘-왜기’와 같은 형태는 제주어의 다른 어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ㄱ) ᄀᆞᆨ주-와기 (할퀴기를 잘하는 사람)
ㄴ) 노니-왜기 (약지손가락)
ㄷ) 노녀-와기 (일을 하지 않는 어린이나 백수)
ㄹ) ᄌᆞᆸ주-와기 (집게벌레)
ㅁ) 입ᄐᆞ리-왜기 (입이 틀어진 사람)
위 어형들을 모두 비교해 보면 우선 ‘-와기’~‘-왜기’는 접미사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특히 (ㄱ)와 (ㄹ)를 보면 그 역할이 자명하다2. 제주어에서 ‘ᄀᆞᆨ주-’는 ‘할퀴다’라는 의미의 용언이며, ‘ᄌᆞᆸ주-’는 ‘꼬집다’라는 의미의 용언이다. ‘ᄀᆞᆨ주와기’는 ‘할퀴기를 잘 하는 사람’이고, ‘ᄌᆞᆸ주와기’는 ‘사람을 꼬집는 벌레(집게벌레)’인바, ‘-와기’~‘-왜기’는 동사 어간에 붙어 ‘그것을 특성으로 가진 사람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ㅁ)은 ‘입 + ᄐᆞ리-3 + -왜기(입을 틀어지게 한 사람)’일 것이다.
또한 ‘안주-’는 “이것저것을 두루 긁어 모아 거두어 잡다”라는 뜻의 용언인데, 그렇다면 ‘안주왜기손가락’은 ‘이것저것을 두루 긁어 모아 거두어 잡는 손가락’이 된다. 기능에 따른 명칭인 것이다.
‘-와기’-‘-왜기’의 이러한 역할은 표준어의 ‘-뱅이’와 일치하는데, 마침 위의 (ㄱ)는 ‘ᄀᆞᆨᄌᆞ배기’로도 나타나는바 ‘-와기’~‘-왜기’는 ‘*-바기’에서 p > W > w를 거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표준어 ‘-뱅이’ 역시 17세기에는 ‘-방이’로 나타나는바, *-바기 > -방이 > -뱅이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다만 아래의 ‘안ᄌᆞᆫ방이(>앉은뱅이)’에서 볼 수 있듯이 17세기 이래의 ‘-방이(>-뱅이)’는 동사의 어간에 바로 결합하지 못하고 그 활용형에 결합한다.
蒲公草 안ᄌᆞᆫ방이 <동의03:22>
따라서 제주어 ‘-바기’~‘-배기’~‘-와기’~‘-왜기’가 어간에 바로 결합하는 것은 독자적인 특징이거나 중세 국어 이전의 특징이 보존된 것일 수 있다. ‘*-바기’의 연원에 대한 탐구는 후고를 기한다.
(2ㄱ)의 ‘아금지’에 대해서는 선뜻 알 수 있는 것이 적다. ‘지’는 ‘지(指)’일 것인데, ‘어금’은 2음절이며 그 형태도 한자어 같지는 않다. ‘금’은 ‘검지’의 ‘검’과 동원일 수도 있겠으나 ‘검지’의 유래부터 묘연하고, 무엇보다 1음절의 ‘아’를 접사로 풀이하기 어렵다. 또한 흥미롭게도 ‘아금-’은 위의 ‘어금(-손가락)[大指]’과 거의 같은데, 둘 간의 관계성은 역시 명확지 않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몇 가지 가능성을 가볍게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고, 그 이상은 후고를 기하기로 한다.
우선 ‘아금-지’의 ‘아금’은 곧 ‘아귀’의 비표준어인 ‘아금’일 수 있다. 국어에는 엄지손가락과 다른 네 손가락과의 사이를 뜻하는 ‘손아귀’라는 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아귀’라 함은 사물의 갈라진 부분을 뜻하는데, 물건의 길이를 잴 때 쓰는 ‘뼘’도 ‘아귀’라고 볼 수 있을 듯싶다. 뼘이 곧 아귀, 즉 ‘아금’이라면, 한 뼘을 잴 때 엄지와 검지를 쓴다고 해서 검지가 ‘아금-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제주어에서 어형 ‘아금’이 존재하는지 명확지 않다. 또한 뼘은 검지가 아니라 중지를 이용해 재는 것이 일반적인바, 중지의 전북 방언으로 ‘뼘재기손가락’이 있다. 제주에서는 검지를 이용해 재기도 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따로 찾지 못하였다.
혹은 ‘아금지’는 ‘*악-음지’ 따위에서 왔고, 이 ‘*음지’가 곧 ‘엄지[大指]’일 가능성도 있다. 육지의 방언형을 보면 ‘검지’를 ‘둘째 손가락’, ‘다음 손가락’에 준하는 명칭으로 일컫는 예가 많은데, 전북 지역에서는 아예 ‘엄지손구락다음’, ‘잉끼손구락다음’4도 쓰이는 바 있다. 그렇다면 ‘아금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엄지와 검지를 관련짓는 명칭일 수 있다는 것인데, ‘악-’의 정체가 묘연하며5 ‘엄지’가 ‘*음지’가 될 경위도 불명확하므로 만족스러운 설명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아금-지’의 ‘아금’과 ‘어금-손가락’의 ‘어금’이 단순히 쌍형어일 가능성도 있다. 경북 지역에서는 ‘엄지손가락’의 뜻으로 ‘큰손까락’이 쓰이는데, 경남 지역에서는 똑같은 ‘큰손까락’이 ‘검지손가락’의 뜻으로 쓰인다는 것이 확인된다. 위에서 우리는 ‘*어금’의 의미를 특정하지 않았으나, 엄지손가락의 모양이나 ‘大指’라는 한자어로 보면 ‘어금’이 ‘가장 큰 것’이나 ‘으뜸’의 뜻을 가졌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금손가락’과 ‘아금지’는 둘 다 ‘큰 손가락’을 나타낼 터인데, 앞에서 보였듯 이는 의미상으로 엄지와 검지 모두를 가리킬 수 있다. 이 경우 ‘아금지[검지]’는 ‘어금손가락[엄지]’에 밀려 그 쓰임이 일부 지역으로 제한되었을 것이다.
중지손가락
제주어에서 중지손가락을 뜻하는 어형은 ‘상손가락’이며, 이는 제주 전역에서 관찰된다. 또한 형태소 ‘상-’은 ‘상손가락’ 외에 아래의 어휘에서도 발견된다.
ㄱ) 상-가메 (머리의 가마)
ㄴ) 상-가지 (가장 위쪽에 있는 나뭇가지)
ㄷ) 상-곡데기 (제일 높은 꼭대기)
ㄹ) 상-곡뒤6 (정수리)
ㅁ) 상-ᄆᆞ루 (제일 높은 마루)
ㅂ) 상-답 (좋은 논)
ㅅ) 상-발가락 (가장 긴 발가락)
이 중 (ㄱ)~(ㅁ)에서는 ‘상-’이 ‘높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볼 수 있으며, (ㅂ)에서는 ‘좋다’, (ㅅ)에서는 ‘크다’를 나타내는 듯 보인다. 특히 (ㅅ)는 ‘상손가락’과 곧바로 대응되는 어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모두 “어떠어떠한 것 가운데 ‘가장 높거나 큰’의 뜻을 지닌 접두사”로 풀이되고 있는 ‘상-’의 용례로 보이며, 이는 아마 기원적으로는 ‘上’일 것이다. 즉 중지는 ‘가장 위에 있는, 가장 큰 손가락’으로서 ‘상손가락’으로 불렸을 것이다.
약지손가락
제주어에서 약지손가락을 뜻하는 어형은 손가락 명칭 중 가장 다양하나, 모두 동계로 파악된다.
ㄱ) 노니왜기-손가락 (전역)
ㄴ) 노니웨기-손가락 (전역)
ㄷ) 노니왜기 (금덕)
ㄹ) 노니-왁이 (납읍)
ㅁ) 노니에기-손가락 (온평)
ㅂ) 노녜기 (납읍)
ㅅ) 노내기-손가락 (전역)
ㅇ) 노네기 (강정)
ㅈ) 노널왜기-손가락 (김녕)
우선 이들은 모두 위에서 언급한 접미사 ‘-와기’~‘-왜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어는 /ㅐ/와 /ㅔ/를 구분하지 않으므로 (ㄱ)와 (ㄴ)는 같은 어형의 이표기로 보아야 하겠으며, (ㄷ)도 ‘손가락’이 덧나지 않았을 뿐 (ㄱ)와 같다. (ㄹ)는 분철 표기되어 있기는 하지만 ‘*노니와기’와 같다.
(ㅁ)의 경우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 p > W > w가 완전히 탈락한 형태인데, 비슷한 경우로는 ‘뱉다’의 평북 방언형 ‘비앝다’가 있다. ‘비앝다’는 ‘*비-밭-’으로 소급되며, 중세 국어에서도 어중 /ㅂ/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妙覺明體ᄂᆞᆫ 샤ᇰ녜 제 ᄆᆞᆯ가 十方ᄋᆞᆯ 머구므며 비ᄫᅡ타 <월석17:71b>
(ㅂ)는 (ㅁ)의 ‘노니에기’에 준하는 형태가 한 차례 더 줄어든 어형이다.
(ㅅ)와 (ㅇ)는 마찬가지로 p > W > w가 탈락한 ‘*노니아기’~‘*노니야기’ 형태에서 /ㅣ/와 /ㅏ/가 음운도치(metathesis)를 겪어 ‘*노내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8세기의 ‘비왓다’, ‘비얏다’ 따위가 19세기에는 ‘뱃다(>뱉다)’로도 문증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제주어에서 용언 ‘노니-’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ㅈ)에서 나타나는 이형태 ‘노널-’은 더욱 설명하기 어렵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비슷한형태는 다른 복합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일을 하지 않는 어린이나 백수’
ㄱ) 노네기 (전역)
ㄴ) 노녀기 (전역)
ㄷ) 노녀-와기 (전역)
ㄹ) 노녜기 (전역)
ㅁ) 노니에기 (전역)- ‘놀이하다’
ㄱ) 노념-ᄒᆞ다- ‘놀음놀이’
ㄱ) 노념놀이 (애월, 수산) <제주특별자치도(2009)>- ‘일을 못 하는 어린 마소’
ㄱ) 노뉴애기 (가시, 법환) <제주특별자치도(2009)>
이들 예시까지 감안하면 용언 ‘노니-’는 ‘노널-’뿐만 아니라 ‘노녀-’로도 나타남을 알 수 있으며, 그 뜻은 모두 ‘놀다’에 준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특히 (1ㄱ~ㅁ), (4ㄱ)는 손가락을 뜻하는 ‘노니왜기’ 계열과 쌍형어인 듯싶다. (1ㄱ~ㅁ)는 모두 ‘*노니-바기’, ‘*노녀-바기’에서 변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4ㄱ) 역시 ‘*노니왜기’에서 변했을 것이다7. 그 의미는 모두 ‘노는 사람, 동물, 물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표준어의 ‘노닐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노닐다’는 기원적으로 ‘*놀[遊]- + 닐[行]-’ 따위로 분석되는바, 의미상 부합한다. 나아가 이 ‘*닐-’은 중세 국어에서 ‘니-’, ‘녀-’로 나타나는바, 형태상으로도 부합한다. 혹자는 ‘니-’과 ‘녀-’가 기원적으로 서로 다른 용언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나, 필자는 중세 국어의 ‘졉-’~‘집-’에 기인하여 ‘니-’~‘녀-’의 선대형을 ‘*ᄂᆖ-’~‘*ᄂᆢ-’ 따위로 재구하고자 한다8. 그렇다면 ‘*노니-바기’와 ‘*노녀-바기’는 이러한 이형태가 반영된 결과가 된다.
19세기를 즈음하여 표준어의 ‘노니-’가 ‘노닐-’이 된 경위는 명확지 않으나, ‘우닐다(<우니다)’, ‘거닐다(<건니다)’에서도 동일한 변화가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중세 국어에는 ‘니-’~‘녀-’의 유의어로서 ‘녈-’이 존재했는데, 이 ‘녈-’이 제주어에서도 확인된다.
- ‘우닐다’
ㄱ) 우녈다 (전역)- ‘울음’
ㄱ) 우념 (전역)
(6ㄱ)는 위의 (2ㄱ), (3ㄱ)에서 보이는 ‘노념’과도 유사한바, ‘*노녈-’을 상정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닐-’, ‘녈-’과 ‘니-’~‘녀-’를 연관짓지 않을 수 없는데, 중세 국어에서 ‘*닐-’은 문증되지 않을 뿐더러 ‘녈[L]-’도 ‘니[L]-’~‘녀[L]-’와 성조가 맞지 않는다. 애초에 /ㄹ/이 삽입될 경위도 명확지 않다.
이러한 의문점을 해소하는 것은 후고를 기하고, 이 글에서는 다만 ‘*노녈-’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를 중세 국어 ‘노니-’~‘노녀-’와도 연관지음으로써 (ㄱ~ㅈ)의 ‘노니-’, ‘노녀-’, ‘노널-’을 ‘노닐[遊行]-’로 풀이하는 데에서 그치고자 한다.
그렇다면 마침내 제주어에서 약지손가락을 뜻하는 ‘노니왜기손가락’과 그 이형은 모두 ‘노니는 손가락’, ‘노는 손가락’을 뜻했을 것이다. 위의 ‘안주왜기손가락’이나 아래의 ‘귀오개기’를 보면 제주어에서는 각 손가락을 그 기능에 따라 지칭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맥락 속에서 ‘노니왜기손가락’은 ‘별다른 기능이 없는 손가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마치 ‘노네기(백수)’와도 같은 것이다.
새끼손가락
마침내 제주어에서 새끼손가락을 뜻하는 어형은 세 가지로, 두 계열로 나뉜다.
- ㄱ) 새끼-손가락 (전역)
ㄴ) 생끼-손가락 (온평)- ㄱ) 귀-오개기 (납읍)
(1ㄱ-ㄴ)는 명백히 육지말의 ‘새끼손가락’과 같다. 이 중 (1ㄴ)는 치경음 /ㄲ/ 앞에 비음이 덧난 것으로 위의 ‘어금’~‘엄금’과 같다.
반면 (2ㄱ)의 ‘귀오개기’는 송상조(2023)에서 ‘귀를 오비는 도구’로 설명하며 ‘새끼손가락’을 나타내는 관용어로서 풀이된 바 있다. 이는 전남 방언의 ‘귀오부제기손가락’과도 상통하는바 의미상으로 매우 적합하다 하겠다.
허나 그렇다면 ‘귀오개기’의 파생 과정이 불투명하다. ‘오비다’의 제주 방언형은 ‘오비-’, ‘오의-’, ‘오이-’인데 ‘오개기’에서 선뜻 이러한 어간을 분리할 수 없으며, ‘오비다’의 다른 방언형을 살펴보아도 2음절에 /ㄱ/를 가진 어형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필자는 ‘귀이개’의 옛말 내지 방언형 ‘귀우개’를 참고하고자 한다.
耳穵子 귀우개 <역해上:44a>
역시 어간을 분리하기 쉽지 않으나, ‘귀우비개’, ‘귀후비개’, ‘귀후개’ 등의 방언형으로 미루어 보아 ‘귀우개’는 ‘*귀우의개’~‘*귀우이개’~‘*귀우위개’ 따위에서 3음절의 모음이 탈락한 어형임을 제안하고자 한다9. 같은 이치로 ‘귀오개기’를 ‘귀-오-개기’로 보자면, ‘-개기’는 도구를 나타내는 접미사 ‘-개’의 이형으로 풀이되어 있는바 ‘ᄂᆞᆯ개기(날개, 지느러미)’, ‘ᄀᆞᆯ개기(호미)’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귀오개기’의 선대형은 ‘*귀오의개기’ 정도로 재구할 수 있겠으며, 뜻은 송상조(2023)의 풀이와 같이 ‘귀를 오의는(오비는) 도구’가 된다. 즉 ‘안주왜기’, ‘노니왜기’와 같이 기능에 따른 명칭인 것이다.
맺음말
이제까지 제주어의 손가락 어휘를 가볍게 고찰해 보았다.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의 모든 명칭에 대해서 가설을 세울 수 있었으나,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도 많고 논증이 미흡한 부분도 많다.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보강하고자 하나, 우선은 역시 후고를 기한다.
참고문헌
송상조 (2023). 20세기 제주말 큰사전. 서울: 한국문화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1995). 한국방언자료집Ⅰ~Ⅸ. 서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어째서 보다 보수적 어형으로 보이는 ‘어금’이 ‘엄’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문증되는지는 명확지 않다. 후고를 기한다.↩︎
(ㄴ), (ㄷ)는 아래에서 논한다.↩︎
‘틀-이-(사동접미사)’와 같은 구성이다.↩︎
‘잉끼손가락’이란 ‘엄지손가락’을 가리킨다.↩︎
필자는 먼저 ‘아기’ 내지는 지소사 ‘-악’을 떠올렸으나, ‘-악’은 접두사가 아닌 접미사일뿐더러 의미도 잘 통하지 않는 듯싶다. 검지가 엄지의 다음, 둘째 손가락이기로서니 엄지보다 작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곡뒤’만으로도 정수리를 뜻한다.↩︎
‘니왜’ /ni.uɛ/가 ‘뉴애’ /niu.ɛ/로 된 것이다.↩︎
이만 놓고 보면 양성 모음이 반영된 어형이 특히 제주나 경상 등지에 남아있을 법도 하나, 그러한 예는 찾지 못하였다. 후고를 기한다. 다만 중세 국어 ‘녀-’는 ‘님금 녀아가샤ᄆᆞᆯ 行幸이라 ᄒᆞᄂᆞ니라 <월석02:67b>’에서와 같이 양성 모음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모음이 어째서 탈락했는지는 명확지 않다. 현대형 ‘귀이개’의 경우 ‘귀우개’에서 동화되었거나 ‘*귀우이개’에서 반대로 /우/가 탈락한 어형일 수 있다. 보다 면밀한 연구는 후고를 기한다.↩︎